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유배지 흑산도에서 민중과 학문을 연결했던 실존 인물, 정약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실학자로서, 단절된 환경에서도 백성과의 소통을 통해 지식의 가치를 확장한 인물입니다. 어류 백과 ‘자산어보’를 소재로, 학문이 어떻게 현장과 연결되고, 지식인이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약전의 인물상을 살펴보고, 실제 역사 기록과 학문적 행적을 통해 그가 오늘날까지 의미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를 분석합니다.
자산어보 속 정약전의 인물상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연결을 추구했던 지식인의 모습을 정약전이라는 인물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천주교 탄압 사건인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된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학문적 열정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그는 단순히 책 속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어부인 장창대와의 교류를 통해 민중의 삶과 자연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배우고 받아들입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인물은 고고한 유학자가 아닌, 땀 냄새나는 민중과 소통하며 진짜 삶을 배우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학문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며, 지식의 주체가 단지 지배계층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장창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중하며, 함께 어류 백과사전을 집필하는 동반자로 여깁니다. 이는 조선 시대 상하 위계질서를 넘는 급진적 태도로, 이를 통해 실학자의 진보성과 인간 중심적 사고를 부각합니다. 그는 유배생활 내내 고뇌하고 고민하면서도, 결국 학문이 인간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성찰은 현대의 지식인들에게도 시사점을 던지며, 관객에게 학문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되물어보게 만드는 중요한 메시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 기록
영화 속 중심 소재인 ‘자산어보’는 실제로 1814년경 흑산도에서 집필한 해양 생물 백과사전입니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지식을 모아 놓은 책이 아니라, 당대 민중의 생활 지식과 자연 생태에 대한 관찰이 종합된 실학적 기록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유배지에서 어부들과 직접 교류하며 어류, 갑각류, 연체동물 등 다양한 생물의 생태, 명칭, 형태, 이용 방식 등을 꼼꼼히 수집하고 정리했습니다. 당시 중앙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 생물과 민중의 구술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에서 혁신적인 시도였습니다. 특히 그는 민중의 말과 경험을 신뢰하고 이를 과학적 지식의 재료로 삼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주자학 중심 학문과 확연히 구별됩니다. 집필 과정은 그 자체로 지식의 민주화 실현이었으며, 이로 인해 단순한 유배자가 아닌 조선 실학의 실천적 구현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작품은 이러한 집필 과정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며, 학문이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생활과 호흡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특히 장창대와의 협업은 당시의 계급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로, 백성과 지식인이 대등한 관계를 통해 지식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현대적 시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현재도 어류 생태 연구나 민속학, 언어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귀중한 사료이며, 학문과 철학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원동력이 됩니다.
조선 후기에서의 학문과 가치
조선 후기 학문은 기존의 성리학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실용과 경험을 중시하는 실학 사조로 전환되던 과도기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인공은 ‘현장을 아는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이상을 구현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는 이론이나 경전을 암송하는 데만 머물지 않고, 실제 자연을 관찰하고 백성의 삶에 깊이 들어가 그 안에서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의 접근은 당시의 주류 학자들로부터는 외면당했을지 모르지만, 후대에 이르러 ‘실학의 완성형’으로 불릴 만큼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단순히 자연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공존 관계를 고민했고,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삶과 지식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유배라는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과 함께 지식을 쌓으며 사회적 책임을 실현한 사례로, 오늘날 참여연구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실학자 집안 출신으로, 동생 정약용과 함께 조선 후기 실학을 이끈 대표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동생과 달리 제도 개혁보다는 자연과 민중 중심의 실천에 더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로 인해 보다 인간적이고 현장 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교육, 연구, 사회적 소통을 고민하는 지식인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학문적 태도와 인간적 고민을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재현하며, 과거의 인물이 현재에도 살아 있는 지적 자산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단지 역사 속 유배자나 생물학자가 아닌, 민중과 자연을 연결하며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한 실학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식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