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킹메이커>는 단순한 정치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 신념, 그리고 타협의 경계를 탐구하는 심리적 드라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정치 격변기를 배경으로,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부딪히는 긴장 속에서 ‘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권력을 얻기 위한 계산과 인간적인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 지금의 현실에도 똑같이 유효하다. 이 영화는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에게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 '킹메이커' 속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내면, 두 남자의 대립
영화의 중심은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그의 참모 서창대(이선균)의 관계다. 김운범은 청렴하고 이상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현실 정치의 벽 앞에서 점점 한계를 느낀다. 반면 서창대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전략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그는 선거를 게임처럼 바라보며, 결과만이 정의를 증명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의 철학은 처음엔 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정치가 본격적으로 권력 싸움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충돌한다. 김운범은 ‘국민의 신뢰’를 원하지만, 서창대는 ‘표의 수’를 원한다. 김운범이 “정치는 신념으로 해야 한다”라고 말할 때, 서창대는 “신념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들의 대립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누구나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선택을 강요한다. 영화는 바로 그 ‘선택의 순간’에 인간의 진심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서창대의 냉정함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이며, 김운범의 이상주의는 현실을 외면한 고독한 신념이다. 이 미묘한 대비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느 한쪽에도 쉽게 감정이입하지 못하게 만들며, 인간이 가진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1970년대 정치 현실의 재현과 사회적 맥락
<킹메이커>의 배경은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이다. 이 시기는 언론이 통제되고, 선거는 조작되며, 권력은 특정 세력에게 집중된 시대였다. 그러나 그 억압 속에서도 사람들은 변화와 민주화를 꿈꿨다. 영화는 이 모순된 시대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지나친 과장이나 정치적 편향 없이 ‘시대의 공기’를 표현한다. 촬영 미술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서울과 부산, 시골 유세 현장을 오가며 재현된 공간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기록처럼 정교하다. 낡은 벽보, 먼지가 쌓인 골목,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리 등은 당대의 혼란과 긴박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감독 변성현은 <불한당>으로 이미 인간 심리의 회색지대를 탐구한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권력’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고, 또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닌 이유는, 그 시대가 오늘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 역시 정치적 언어와 이미지 전략이 지배한다. 사람들은 진심보다 자극에 반응하고, 신념보다 이익을 좇는다. <킹메이커>는 그런 현대인의 무감각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전략, 윤리, 그리고 진실의 경계선
영화의 핵심은 서창대가 만들어내는 정치 전략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조작하는 심리전의 천재다. 유세 현장에서의 카메라 각도, 선거 구호, 언론 노출 타이밍 모두 그의 손끝에서 계산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점점 ‘진실’과 멀어진다. 서창대는 처음엔 김운범을 진심으로 믿었다. 그러나 선거가 거듭될수록 ‘정치의 승리’가 ‘도덕의 패배’를 의미하게 된다. 그는 “결국 이긴 자만이 정의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양심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는 이러한 내적 갈등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서창대의 눈빛, 짧은 침묵, 한숨 등은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허무함을 표현한다. 한편 김운범은 이상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상처받는다. 그는 정의를 말하지만, 현실은 정의를 조롱한다. 결국 영화는 ‘정치의 본질은 진실이 아닌 이미지의 싸움’이라는 냉혹한 진단을 내린다. 그러나 동시에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서창대가 마지막에 자신이 만든 허상과 마주하는 장면은, 진실이 늦게라도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의 도덕성과 리더십의 본질
<킹메이커>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리더십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좋은 지도자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승리의 수로, 아니면 신념의 무게로? 이 질문은 단지 영화 속 정치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회사, 학교, 사회 등 모든 공동체에서 리더십은 인간관계의 중심에 있다. 이 영화는 권력의 구조를 통해 ‘도덕적 책임’이 사라진 사회를 경고한다. 서창대가 승리를 얻었음에도 허무해하는 이유는, 그의 성공이 타인의 희생 위에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 김운범은 실패했지만 인간적으로 존경받는다. 진정한 리더십은 이기는 것보다 옳은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영화는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전달한다. <킹메이커>는 단순히 과거의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SNS, 여론, 이미지 정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진심’과 ‘진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난다.” 서창대와 김운범의 대립은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정치든, 삶이든,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남기는 긴 여운은 바로 그것이다. 진실을 선택하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 세상이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며, 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봐야 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