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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멈출 수 없는 열차 속 계급,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by 모리프리 2026. 1. 12.

설국열차 포스터
출처 CJ 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는 2013년 개봉 이후 한국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장르적·사상적 깊이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인류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그 결과 전 지구가 빙하기에 빠진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단 하나의 열차에 몸을 의탁한 채 끝없이 궤도를 순환한다. 이 단순한 설정은 곧 강력한 은유로 확장된다. 열차는 사회이고, 시스템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 그 자체다. 열차는 멈출 수 없고, 멈추는 순간 모두가 죽는다. 그래서 어떤 불합리와 희생이 존재하더라도 시스템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설국열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역시 비슷한 구조 위에 놓여 있지 않은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화려한 액션과 독특한 미장센, 빠른 전개 속에서도 영화의 중심에는 불평등, 계급 고착, 희생의 정당화라는 묵직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이 단순한 SF 블록버스터를 넘어 강력한 사회적 우화로 기억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끝없이 달리는 열차, 멈출 수 없다는 명제가 만들어낸 폭력

설국열차의 세계관은 극도로 단순하면서도 잔혹하다. 얼어붙은 지구 위를 단 하나의 열차가 쉬지 않고 달리고, 그 안에 인류의 마지막 생존이 걸려 있다. 열차는 멈출 수 없고, 멈추면 모두가 죽는다. 이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모든 윤리와 도덕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영화는 이 전제를 통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생존을 이유로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열차의 내부 구조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꼬리칸에는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몰려 살고, 앞칸으로 갈수록 자원과 권력, 쾌락이 집중된다. 이 계급 구조는 우연이나 자연 발생적인 결과가 아니라, 철저히 관리되고 유지되는 질서다. 사람들은 태어난 위치에 따라 삶의 조건이 결정되며, 이동은 통제되고, 저항은 폭력으로 억눌린다. 영화는 이 구조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의 대비를 통해 관객이 직접 체감하게 만든다. 어둡고 비좁은 꼬리칸과 밝고 화려한 앞칸의 차이는 말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불평등을 각인시킨다. 특히 열차가 ‘순환’한다는 설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열차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궤도를 반복한다. 이는 변화 없는 발전, 탈출구 없는 성장이라는 역설을 상징한다. 우리는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같은 시스템 안을 맴돌고 있을 뿐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설국열차는 이 질문을 영화의 전반에 걸쳐 끈질기게 되풀이한다.

 

꼬리칸에서 앞칸으로, 혁명이라는 이름의 이동과 그 한계

설국열차의 서사는 꼬리칸에서 시작된 반란이 앞칸을 향해 전진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이 이동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계급 상승과 혁명의 은유다. 주인공 일행은 각 칸을 돌파하며 시스템의 내부를 하나씩 목격한다. 폭력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구간, 아이들을 길들이는 교육의 공간, 소비와 향락이 지배하는 상층부의 모습은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단계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계급 구조가 단순한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임을 분명히 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 혁명의 여정을 결코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반란은 정의로운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발생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이 반란조차 시스템이 예측하고 허용한 범위 안에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항이 완전히 통제되고, 일정한 주기로 반복된다면, 그것은 과연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인가, 아니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불과한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앞칸으로 갈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시스템은 무작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하고, 그 희생은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이때 영화는 도덕적 판단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그 구조를 직접 목격하고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설국열차는 관람이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연출 또한 이러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강화한다. 각 칸의 색채와 분위기는 계급 차이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며, 액션 장면 역시 통쾌함보다는 처절함을 강조한다. 싸움은 해방을 향한 영웅적 행위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승리의 순간에도 환희보다 허무가 먼저 찾아오는 이유는, 싸움의 목적이 명확한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질서로의 이동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설국열차'가 끝내 남기는 질문

설국열차는 한국영화가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삼아도 충분히 급진적이고 불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규모나 장르적 성취에 있지 않다.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 있다. 더 나은 칸으로 이동하는 것이 과연 해답인가, 아니면 시스템 자체를 멈추는 위험한 선택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보아도 설국열차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불평등과 계급 고착, 희생을 전제로 유지되는 사회 구조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열차는 허구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논리는 우리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합리를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관객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설국열차는 희망을 쉽게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의 무게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넘긴다. 앞칸으로 가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열차를 멈추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설국열차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인간 사회를 끝까지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우화로 오래도록 기억된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과 부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