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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느림의 속도로 완주해낸 감동과 존엄의 이야기

by 모리프리 2026. 1. 6.

말아톤 포스터
출처 쇼박스

말아톤은 2005년 개봉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울림으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년 초원과 그의 어머니가 함께 마라톤 완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단순한 감동 실화 영화로 규정하기에는 그 깊이가 상당하다. 말아톤은 ‘극복’이나 ‘기적’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보다, 한 인간이 자신의 리듬으로 세상과 호흡하는 과정을 차분히 보여준다. 빠른 속도와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느림과 반복,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담담하게 전한다. 관객은 초원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정상과 기준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말아톤은 눈물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조용히 바꾸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자폐를 다루는 방식, 연민이 아닌 존중으로

말아톤이 특별한 이유는 자폐를 소재로 삼는 방식에 있다. 많은 영화들이 장애를 극적인 장치로 활용하며 관객의 감정을 빠르게 자극하는 반면, 이 작품은 초원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만의 규칙과 감각, 그리고 분명한 취향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된다. 초원이 초코파이를 좋아하고, 동물 이야기에 집착하며, 숫자와 반복된 행동에 안정감을 느끼는 모습은 과장 없이 일상의 일부로 제시된다. 이러한 묘사는 관객에게 동정심보다는 이해와 공감을 유도한다. 영화 초반, 초원과 세상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시선, 학교와 사회의 규칙, 그리고 타인의 기대는 그에게 늘 버거운 벽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영화는 이 간극을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는다. 대신 초원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무엇인지, 그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그 답이 바로 ‘달리기’라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달리기는 언어적 소통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몸과 감각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는 어머니의 시선을 통해 보호와 집착, 사랑과 욕심이 얼마나 쉽게 뒤섞일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초원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어머니가 스스로의 불안과 기대를 아이에게 투영하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공감을 안긴다. 이 솔직함이야말로 말아톤이 감동을 넘어 진정성을 획득하는 지점이다.

 

마라톤이라는 은유, 삶을 대하는 또 다른 속도

말아톤에서 마라톤은 단순한 스포츠 종목이 아니라 삶의 은유로 기능한다. 초원에게 달리기는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아니라,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다. 그는 기록이나 순위에 집착하지 않고, 정해진 코스를 끝까지 완주하는 데 집중한다. 이 모습은 늘 성과와 효율을 요구받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속도를 늦추는 것을 실패로 오해해 왔는지, 이 영화는 조용히 되묻는다. 훈련 과정에서 드러나는 초원의 반복적인 행동과 고집은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그 과정을 미화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좌절과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어머니와 코치 사이의 충돌은 초원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감정의 복잡함을 잘 보여준다. 이 갈등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책임지려는 마음이 빚어낸 결과에 가깝다.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관객은 점점 초원의 달리기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그의 리듬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는 관객의 시선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말아톤은 초원이 세상에 적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이 초원의 속도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 그려낸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영화는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 변화의 지점을 발견하게 만든다. 마지막 레이스 장면은 그 모든 과정을 집약한다. 긴장감 넘치는 연출 대신, 담담한 시선으로 초원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그의 숨소리와 리듬에 집중한다. 완주의 순간은 폭발적인 환희보다 깊은 안도감과 존엄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해냈다’는 외침이 아니라, ‘여기까지 왔다’는 조용한 선언에 가깝다.

 

'말아톤'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

말아톤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속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설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영화는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초원의 일상을 통해,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삶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만든다. 오늘날 다양성과 포용이 중요한 가치로 강조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기준과 비교 속에서 상처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말아톤은 단지 한 개인의 실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메시지는 지금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감정은 눈물이 아니라 잔잔한 여운이다. 그리고 그 여운은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타인의 속도를 얼마나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얼마나 관대했는가. 말아톤은 그 질문을 오래 붙잡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 실화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